통번역대학원 입시

2024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합격 수기 - 주*미

작성자 주*미

작성일 2023.12.19

조회수 407

안녕하세요!


2024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 진학하게 된 주*미입니다. 먼저 선생님들과 학우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흥미롭고 다양한 주제에 대한 혜안과 유머를 겸비하시고 누구 하나 수렁에 빠지는 일 없도록 마음 써주시는 이미숙 선생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이한 두 언어가 얼마나 풍부히 공명할 수 있는지 보여주셨던 이슬아 선생님, 고정 스터디를 하며 한결같은 선의와 성실함, 내공으로 밝은 빛을 나누어 주셨던 ㅈㅅ 님, ㅎㅅ 님, 채린 님, ㅎㅈ 님, ㅈㅇ 님 가까이할 기회는 적었지만 어김없이 환대해 주신 학우님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현재 만 32살이고 8년의 프랑스 체류 후 귀국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파리 8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창작활동만으로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작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프랑스어 통번역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독자와 관객으로서 통번역사님들의 노고를 받아먹기만 해왔지 통번역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나 경험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로 새로운 세계에 융화될 수 있을지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단은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6월 시작반에 등록하였고, 7월 개인 면담에서 성실히 하면 합격 할 수 있을 거라는 미숙 선생님의 말씀에 기대어 입시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학우님들께서 실질적이고 소중한 팁을 아낌없이 공유해 주시고 계시기에 제가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을까 싶지만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정석으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벽돌을 차곡차곡 올려야 튼튼한 집이 지어지듯 언어의 구조와 논리부터 정확히 학습하고 실생활에 적용하기보다 살아야겠기에 말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동경하는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고, 또 그런 자신을 세상에 관철하는 일은 당시의 제 또래들에게 죽고 사는 문제와도 같았습니다. 머리보다 절박함이 앞서 언어를 체화해 나갔고, 정확한 문법으로 정제된 말을 하기보다 부서진 문장과 어조, 표정, 몸짓으로 설득하는 식의 말하기를 했습니다. 원어를 가장 중립적이고 적확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분야에 입문하며 이런 언어습관은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저에게 어떤 표현은 관성으로 굳어버려 가장 기본적인 관사나 전치사를 틀리는 일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틀리고 반복적으로 교정하다 보면 새로운 습관이 생기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자 했습니다. 또한 처음 마이크를 잡고 통역연습을 시작했을 때, 통역하기 난감한 어휘나 표현을 만나면 그 디테일에 말려버린 나머지 여타 내용은 깡그리 놓쳐 버리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업과 스터디를 통해 발화자는 언제고 예측하지 못한 용어나 내용을 말할 것이고 아무리 예비한들 어쩔 수 없다는 것, 침착하게 맥락 안에서 내용을 파악하고 나름의 논리 구조를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학원에서 다루는 텍스트의 독해와 청취에 어려움이 없다면 보다 유려한 통역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꺾고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공부와 다른 일들을 병행해야 했던 상황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같지만, 이미 수년의 학습과 수업, 스터디를 통해 쌓아온 내공이 몸속에 잠재하고 있으니 자신에게 맡기고 내려 놓아도 좋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듣고 읽고 말하는 것도 공부만큼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감히 생각해 보건대 말을 옮기는 일이란 결국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시킬 수는 없는 법이라서 온갖 잡다한 경험과 지식도 문화, 곧 언어의 살과 피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자신이 보내는 시간에 보다 관대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 말보다 시 한 편 나누고 싶습니다.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