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4학년도 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 최종합격한 이*아입니다. 먼저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선생님들께, 또 저와 함께 스터디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학원에 와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평생 함께 갈 인연을 만든 것 같아서 올 한 해는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대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니 두근거리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이 합격 수기를 통해 지난 2023년을 돌아보고, 더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어보고자 합니다!!
Ⅰ . 서론
1. 성장배경
저는 2000년~2013년까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프랑스어권 국가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반 정도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것이 되겠네요. 학교는 중학교의 4e 즉 한국식으로 치자면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 다녔습니다. 프랑스교육과정을 따랐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불어는 자연스럽게 체득했습니다.
2. 한국에서의 생활
귀국하게 된 시점은 2013년 여름 즈음이었습니다. 중3부터는 한국의 공교육과정을 밟으며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국영수에 집중하고 대입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불어는 뒷전이었어요. 그래도 자격증은 있어야 하니 고1때 Dalf C1을 획득했습니다.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관심 분야가 워낙 다양해 디지털마케팅 분야에서 인턴을 해보기도 하고, 외교통상학 연계전공 과정을 들으며 국제법, 국제정치, 국제경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이후로는 점점 불어와는 멀어지는 삶을 살았네요. 2021년에 달프 C2도 턱걸이로 취득하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사실 외교관이 되기 위한 스펙에 불과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외교관후보자가 되기 위한 고시생활에 접어들면서 우울감과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쟁쟁한 실력자들 사이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게 되더라고요. 사람 좋아하고, 누구보다 세상 일에 관심 많던 제가 점점 시들어간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존감이 다 깎여나간 채로 이 무의미한 N년짜리 레이스를 이어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외교관이 되더라도 행복할 것 같지 않더군요. 수년간 꾸어온 꿈을 포기하고 나니, 이 시점에서 저에게 남은 건 프랑스어뿐이었습니다.
저는 올해초까지만 해도 불어로 먹고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제 실력이 못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더군다나 통번역은 감히 생각도 못할 다른 세상 능력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통역사라는 직업이 제 알고리즘에 떴고, 그냥 운명처럼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다 하면서 바로 4월부터 코리아헤럴드에 다니게 되었어요.
Ⅱ. 본론
1. 어서와 통역은 처음이지?
본격적으로 통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단순히 흥미가 아닌 순수한 ‘재미’를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제 성격과는 잘 맞는 분야라고 느꼈습니다. 우선은 경제, 사회, 과학기술, 인문, 사법 등의 다양한 분야를 총망라하는 공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얕고 넓은 지식을 줍줍하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그 새로운 지식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모든 과정이 짜릿했습니다. 어떤 형태의 정보(글, 영상, 음악…)를 보더라도 “저건 불어로 뭐라고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또한 저는 태어날때부터 관종인 사람인데요, 때문에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통역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자신 없는 주제를 만날때도 있고, 그날따라 안 들리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난 통역에 미친 사람이다. 난 할 수 있다. 난 멋지다. 이 정도 긴장감은 아무것도 아니야, 극복 할 수 있어” 이렇게요. 후술하겠지만, 학원 진도를 잘 따라가고 복습과 스터디를 병행하면 프랑스어 실력은 절로 늡니다. 결국 통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과 멘탈 관리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 많이 웃고, 긴장감을 조절하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켰어요.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서요.
2. 1차시험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공부 방법을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1차 시험은 [4분 분량의 한국어 지문을 듣고 노트테이킹하여 불어로 요약하기, 불어 지문을 듣고 한국어로 요약하기]와 [불어 지문을 읽고 한국어로 에세이 작성하기, 한국어 지문을 읽고 불어로 에세이 작성하기]로 나뉩니다.
2.a 청취요약
청취요약을 할때 저만의 팁이 있다면, attache 즉, 필기체로 노트테이킹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번 손에 익고 나면 속도도 붙고,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적을 수 있어 유용합니다. 또한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만들어두고 계속 연습해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 는 ‘~을 통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는 ‘그러나!’, ‘bc’는 ‘왜냐하면’ 등으로 기호화해서 노트테이킹했습니다. 불한 청취에서는 못 알아듣는 말은 과감하게 넘기고, 잡을 수 있는 말은 최대한 잡는다!의 느낌으로 받아적었습니다. 한글 특성상, 글이 짧아지기 때문에 불어로 들을때 디테일을 최대한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한국어 청취에서는 키워드 정도를 노트테이킹하고, 들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면 반대로 길어지기 때문에, 분량 조절을 위해 주요 내용을 간추려서 쓰고 남은 줄 안에 서본결이 다 나올 수 있는지 눈대중으로 확인해가면서 썼습니다.
실제 1차 시험 당시에는, 생각보다 불어가 잘 안 들렸는데요, 뼈대를 잡고 예시를 최대한 다 썼습니다. 한국어청취는 생각보다 내용이 많아 분량을 줄이느라 애먹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부터 강대국들의 신무기개발경쟁, 마지막에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내용이 좀 방대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연사가 힘주어 읽은 부분은 빠뜨리지 않고 모두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현대의 기술 트리니티라고 해서 반도체, AI, 양자컴퓨팅이 나왔는데, 반도체나 AI는 알고 있었지만 양자 컴퓨팅은 불어로 뭐라 할지 몰라서 그냥 la technologie de quantum 이라고 당당하게 썼습니다. 프로메테우스도 Prometheus 이라고 그냥 뻔뻔하게 오답을 썼는데요. 이 둘 때문에 1차 떨어지는 줄 알고 전전긍긍했지만… 결국 합격한 걸 보니 이런 사소한? 디테일 때문에 불합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정보 기술 분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것 같으니 개념 정리는 꼼꼼히 해놓으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b 에세이
에세이는 서론1문단-본론3문단-결론1문단 정도로 구성했습니다. 한 문단에는 보통 다섯 줄을 썼습니다. 제 견해는 결론 부분에 살짝 추가하는 정도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글의 내용과 동의한다고 썼습니다.ㅎㅎ제한 시간 안에 에세이 두 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 의견이 들어가도록 쓰는 건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기 때문에 거의 번역한다싶을 정도로 원문을 참고하는 편입니다. 저는 대입 논술과 고시논술 경험이 있어 긴 글을 구성하고 작성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혹시 글을 쓰시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구조화를 먼저 하고나서 에세이를 써보고, 점차 구조화에 투입하는 시간을 줄이는 식으로 연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하는 연습과 더불어 1차 스터디를 병행하시면 큰 무리 없이 합격할 수 있습니다!
실제 시험장에서는 생각보다 칸이 작아서 평소보다 내용을 축약해서 썼는데요, 저처럼 글씨가 너무 크거나 문장을 길게 쓰시는 편이라면 분량조절도 염두에 두시고 대비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2차시험
3.a 대략적인 공부 방법
드디어 대망의 통역 공부인데요.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아무래도 스터디입니다. 저는 4월부터 시작반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고정 스터디를 했습니다. 초반에는 학원에서 나가는 진도와 같은 주제로 불한통역을 위주로 했습니다. 스터디 자료를 준비하면서 동일 주제에서 많이 사용되는 어휘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동지애를 느끼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길게 준비하는 시험인만큼,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서로 힘이 되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늦게 통대 입시를 시작한만큼, 특별한 공부방법보다는 학원수업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어차피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은 다~ 미숙쌤하고 다루게 됩니다. 그냥 믿고 미숙쌤’s 커리큘럼 따라가세욧!! 여러 분야에 대해서 얼만큼의 배경지식이 있는지, 그걸 한국어와 불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여러분. 선생님께서 알맞은 난이도로 중요한 것들을 추려서 가져오시기 때문에 수업자료들이 아주 알차니까 꼭 활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슬아쌤 수업은 시기상 많이 못 들었지만, 유용한 표현을 쏙쏙 가르쳐주십니다. 특히 한불통역에서 써먹기 딱 좋은 표현들을 건질 수 있었어요!
제 공부방법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자면:
1)수업을 열심히 듣고 필기한다
2)수업이 끝나고 내용을 정리한다 (특히 내가 모르는 단어/표현 위주로 정리한다)
3)같은 주제를 구글링 하여 다른 텍스트나 영상을 찾아서 읽고 듣는다
4)2+3의 내용을 합쳐서 최종 노트 필기한다
이런 식으로 수업 내용과 내가 추가로 찾아본 내용을 읽고, 쓰고, 듣고, 마지막으로 통역 스터디를 통해서 발화하면서 내 표현으로 만드려고 해봤습니다. 참고로 저는 쓰면서 외우는 편이어서 무조건 손 필기를 하려고 했어요! 주로 참고한 사이트는 franceinfo, franceinter, ARTE, ARTE Family FR, Le Monde(르몽드기사는 통역자료로 쓰기에는 어려워서 관심분야 서칭할때 참고용으로만 씀) 입니다.
3.b 기억이 안 나요…
사실 이 문제점은 아직도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들을 땐 분명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들었는데, 통역을 하다보면 뒤의 내용을 자꾸 잊게 됩니다. 마인드 맵도 그려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더 열심히 들어보려고 해도 저한테 딱 맞는 방법을 찾지는 못했는데요ㅠㅠ 결국에는 내용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 텍스트를 그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뭔가를 쓰면서 암기하는 편이고, 평소에 텍스트라는 매체에 익숙해서 결국 이렇게 된 것 같은데요, 그림으로 보자면 이런 느낌입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내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러이러한 문장 다음에 무슨 내용이 더 있었는데? 두 줄 정도 되는 분량의 내용이 있었지 참!' 하면서 순서를 외우기가 편해지더라고요. 굳이 설명하자면 전체 글 중에서 키워드는 볼드체로 보이고, 나머지 디테일은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느낌입니다. 텍스트를 그림처럼 외운다는 게 좀 이상해보일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게 제일 잘 외워지더라고요?
한불통역같은 경우에는 들으면서 불어 생각을 해버리면 뒤의 내용을 놓치기 일쑤여서, 최대한 내용 이해에 집중했습니다. 내 뇌 번역기를 꺼버리셔야 합니다… 한번 불어 대응어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면 그 다음 내용은 진짜 절대 기억 못해요ㅠㅠ
3.c 2차 시험후기
실제 시험에서는 불한통역은 기억하기 크게 어려운 편이 아니어서 열심히 끄덕이면서 들었고, 큰 어려움 없이 통역할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 교수님의 실제 경험같은 일화가 나오는데요, 오히려 이런 스토리텔링 식의 내용은 기억이 더 잘 납니다!
한불통역은 들으면서 ‘생각보다 긴데? 왜 안 끝나?ㅜㅜ’하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주제 자체는 수업시간에 다뤘던 것들의 ‘짬뽕’인 느낌이라서 어렵진 않았지만, 통역할때 욕심이 나서 디테일을 자꾸 추가하다보니 뒤의 가장 중요 키워드인 ‘기후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는 통역을 못하고 나왔습니다. ㅎㅎ 농경지가 여의도의 몇배라는 디테일까지 굳이?싶긴 한데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생각나서 다 잡아버렸어요. 물론 큰 흐름은 앞에서부터 천천히 잡아왔고, 국가들이 그래서 탄소감축, GMO 개발 등의 노력들을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근데 다 해놓고 뭔가 찜찜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 문장 더 추가하겠습니다!" 하고 또 디테일한 설명을 했어요. “어떤 기류가 있는데, 극지방으로 올라가는 대신 한반도 근처에 머물면서 장마를 일으키고 그래서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기후변화 때문에 물가가 인상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애써서 끈질기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ㅠㅠㅠ
분위기는 생각보다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덜덜 떨려서 책상 아래에 기도하듯이 손을 모으고 있었어요. 교수님들과도 꽤 가깝고, 서로 목소리도 잘 들립니다! 방이 작아서 소리가 잘 울렸어요. 통역 시작 전에 발음체크용?인지 모르겠지만 불어 텍스트를 하나 읽어보라고 하셔서 최대한 또박또박 읽었구요, 개인 질문으로는 아프리카에 왜 가게 되었는지,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프랑스 학교에 다녔는지를 물으셨어요!
Ⅲ. 글을 마치며
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대 입시에 진입하게 된 배경과, 실제 공부 방법, 그리고 시험 후기를 알려드렸는데요, 사실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취미로 넷플릭스를 자주 보는데요, 주로 연애, 요리, 서바이벌 프로를 즐겨봅니다. 미국에서 제작된 프로가 (자극적이어서) 제 입맛에 맞아요. 요런 시리즈물들을 불어 더빙으로 바꿔서 보면서 배우게 되는 일상표현들이 많습니다!
특히 진로 고민이 많으신 분들, 또 다른 꿈을 찾아 새롭게 도전하시는 모든 분들께 제 글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인데,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데에 정말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ㅠㅠ 이 자리를 빌려서 미숙쌤, 슬아쌤, 루이쌤, 그리고 함께 통대 입시를 위해 달려온 모든 동생들, 친구들, 언니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더불어서 미래의 통대생 분들을 모두 응원하고 언젠가 필드에서 동고동락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또... 제가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미숙쌤을 통해서 제 연락처로 편하게 연락 주시면 기꺼이 도움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