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내내 바쁜 일정으로 옥죄이던 심신이 풀리니 그동안 시험을 바라보고 달려온 것이 꿈만 같기도 하고, 두렵고 떨리던 순간이 다시 엄습하기도 해서 어지럽지만,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미숙 선생님, 슬아 선생님, 동고동락한 학우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아쉽게 동학년으로 공부하지 못 하게 된 친구들도 금방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불문학과 영화를 좋아해 책과 비디오로 불어를 익혔습니다. 그시절만 해도 어학서적 뒤에 테이프가 붙어 있어서 그걸 카세트에 넣고 발음을 따라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즈음 장 주네의 책을 읽고 그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나는 불어를 하긴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오지랖을 넓혀 잡다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매번 프랑스 책, 영화, 음악을 접할 일이 생겨 야금야금 공부를 이어갔는데요. 하다가 안 하면 까먹고, 또 까먹고를 반복해서 군대에 갔을 적엔 다시 머리가 텅 비었지만, 복무를 마칠 즈음 그래도 애정으로 쌓아온 기술을 살리겠다 마음을 다졌고, 대학원에 오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2월부터 미숙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생소한 주제와 어휘를 많이 접했습니다. 자주 보지 않던 낱말과 표현은 하릴없이 새어 나가서, 시간을 두고 다시 보아 맥락을 익혀야 했고 분명 외웠던 것이 기억나지 않으면 자꾸 답답했지만 아무 도리 없는 것이어서, 기우였을지언정 전혀 모르는 단어가 시험에 나오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던 것이 시험 전날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지나치게 낯선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으나, 저처럼 사소한 것에 마음 졸이는, 인프피들이 타고난 숙명이라 이런 걱정은 업이다 생각하고 앞으로도 등에 지고 가려 합니다.
불문신문을 보면 까다로운 관용어가 많이 나오고, 외국인의 입장에선 기사 내용을 알아야만 겨우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 태반이라 저는 부러 이것을 직접 쓸 수 있을 만큼 애써 익히진 않았습니다. 대학원에선 이마저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겠지만, 본래 우리말로도 개개인이 쓸 수 있는 표현이란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불어로 듣고 한국어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겼고, 너무 어렵게 받아들여 주저앉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제가 잘 아는 익숙한 것을 보다 잘 기억나게끔 연습했고, 수업시간에 받은 문장구역을 비롯한 유인물을 주제별로 복습했으며, 초창기에 어휘를 엑셀로 정리해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컴퓨터가 익숙치 않아 시험이 다가왔을 땐 공책에 손으로 써서 익혔습니다. 막바지에 미숙 선생님이 나눠주신 어휘집을 보니 머릿속에 여태 배웠던 것이 들어서는 것 같아 위안이 됐습니다. 여름에 슬아 선생님이 수업하신 글들 역시 다시 보며 한 주제를 놓고 찬반이 갈릴 만한 토론식 기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유형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한영불을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기도 했고 체력도 달려서 스터디는 많이 못 했지만, 다양한 주제도 공유하고 수업처럼 긴장하며 통역해볼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모두들 귀한 시간 내어 자료도 열심히 준비해 와서 함께 공부하며 참 감사했습니다.
면접 전에 애경홀에서 다같이 대기할 적 불안해서 공책을 펼치고 읽어보긴 했지만 기실 교수님들 앞에 앉았을 땐 무아지경으로 임했던 듯합니다. 해서 기억이 조금 가물거리는데 저의 이력과 불어공부를 하게 된 배경 등을 여쭈셨고, 답변을 한 다음 한불통역 코로나 시대에 프랑스가 마주한 사회적 차별, 불한통역 식초의 원리와 쓰임을 이어 마무리했습니다. 면접실로 통하는 복도에서 한마음으로 덜덜 떨던, 양복 입고 온 다른 과 지원자들, 시험을 돕는 재학생들 풍경이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모쪼록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렙니다. 헤럴드에서 공부한 기억 소중히 안고 정진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구, 저 역시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들의 글에 비해 소략해서 민망하지만, 덧붙일 말을 남겨두고 이만 줄입니다 :)
출처 | 네이버 카페 - 불어 통번역대학원 입시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