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24학년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번역학과에 합격한 강*라입니다. 저의 후기는 일과 입시를 병행하는 분, 프랑스어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뒤늦게 적성을 찾은 분 또는 번역에 뜻이 있는 분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입시 전
21년 8월 프랑스어 시작
21년 11월 B1 취득
22년 3월 B2 취득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과학과 수학을 몹시 좋아하는 타고난 이과생이었습니다. 이후 약학과에 진학해 약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를 좋아해 자주 여행을 떠났지만 생존 영어 몇 마디가 그곳에서 하는 의사소통의 전부였고 프랑스어를 배워볼 생각은 안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하늘길이 막혀있던 2년 전 어느 여름날 ’프랑스를 못가니 대리만족하게 여행프랑스어나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순식간에 프랑스어의 매력에 풍덩 빠졌고 출근하는 날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어와 보냈습니다. 그 결과 예상보다 빠르게 B2까지 취득할 수 있었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통대라도 도전해봐?’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년 4월에 미숙쌤께 처음 연락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쌤의 추천으로 4월 시작반 수업을 들었는데 수강생들의 실력을 보고 저의 무능함과 오만함을 뼈 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도피 겸 동기부여를 위해 5월에 파리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오니 공부는 더 하기 싫어졌으며 그대로 슬럼프에 빠져 학원은 커녕 연말까지 프랑스어를 놔버렸습니다.
헤럴드에서 입시 준비
23년 1-2월 슬아샘 시사중급작문 온라인 수강
23년 3-7월 작문반 오프라인 수강
23년 8-10월 이대실전반 오프라인 수강
슬럼프에 빠진 와중에도 잠시 다녀보았던 해럴드가 자꾸 맴돌았고 통번역에 0.00000001%라도 닿아보았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고 저는 오랜 고민 끝에 번역일이 해보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대 번역과를 목표로 제대로 입시 준비를 하기로 결심 후 1,2월 두 달 동안 혼자서 끌레 문법책 파랑이, 초록이를 N회독 하며 슬아샘 시사중급작문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프랑스어 감을 다시 살렸습니다. 시사중급작문 수업은 다양한 시사별 단어를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역에 대한 감을 익히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문장을 다양하게 번역하는 법과 ”번역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아는 표현으로 의미를 잘 전달하면 된다.“ 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시는데요. 이는 제 번역 공부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3월부터 작문반 오프라인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 수업 들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250단어 분량의 한글 텍스트를 50분 안에 불어로 번역해서 써내야 하는데 저는 절반도 못썼습니다. ”도대체 이걸 다 쓰는게 가능하긴 한건가요?“ 라고 슬아샘께 여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다음 주에는 한 문단을 더, 그 다음주에는 또 한 문단을 더 쓸 수 있었고 네번째 수업부터는 시간 내에 모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번역시험에 점수가 있는지 몰랐는데 6월에 처음으로 한불번역 Bien을 받고 감격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 가끔 점수를 받다가 언젠가부터 계속해서 점수를 받았는데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니 더 힘이 났습니다.
번역에 뜻이 있는 분들은 작문반 수업을 초초초강력추천 드립니다. 매 수업마다 50분씩 번역 시험을 보고 첨삭을 받기 때문에 번역 훈련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모범답안으로 주옥같은 표현들을 우수수 배울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잘 받아먹기만 하면 됩니다. 번역 관심있는 분들은 진짜 무조건...
다만 수업이 주 1회여서 저에게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하여 3,4월에는 1,2월 수업을 일주일에 1강 씩 온라인으로 수강했으며 메일로 첨삭을 받았고, 5-7월에는 슬아샘께 부탁드려 번역 개인수업을 주 1회 받았습니다. 그래서 작문반을 수강하는 3-7월 동안 주 2회 번역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대실전반에서는 작문반과 동일하게 50분간 번역시험을 보았는데 한불, 불한을 번갈아서 했고 단어수는 시험과 동일하게 250-300단어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시간내에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번역 퀄리티 높이기, 검수할 시간 확보하기에 힘 썼습니다.
아쉬운점이 있다면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반, 실전반을 전혀 수강하지 못해서 주제어에 대한 충분한 습득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혼자 하려니 시험 직전까지 애를 많이 먹었으니 가능하면 꼭 수강하시길..
공부방법
개인마다 공부하는 스타일은 천차만별일테고 그냥 각자의 방식에 맞게 매일매일 후회없이 열심히 하는게 정답인거 같긴 합니다. 저는 주변에서 프친놈(프랑스어에 X친놈)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입시 기간동안 제가 고수했던 몇가지를 간단하게나마 열거해보겠습니다.
1.문법 소홀히 하지 않기
모든 외국어 공부가 그렇긴 하지만 번역하시려면 문법은 정말... 아무리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문법서를 늘 곁에 두고 살았습이다. 비문을 봤을 때 어?뭔가 어색한데? 라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그리고 들여다보면 뭐가 오류인지 찾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단어
저는 주3일 약국으로 출근하며 입시를 해서 시험에 올인하는 학우분들에 비해 시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써야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자투리 시간을 아끼려고 종이 귀퉁이에 그날 외울 영단어 몇 개를 적고 북 찢어서 그 종잇 조각을 하루종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보았는데요. 이번엔 디지털 시대에 발 맞춰 단어 목록을 스마트폰에 담아 수시로 꺼내 보았습니다.
또 약국에 환자가 없을때마다 조제실 뒤에 단어장을 펼쳐놓고 단어를 외웠습니다. 번역이나 독해 같은 것들은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방해가 되어서 일하면서 되도록 하지 않았고 짧은 호흡이 가능한 단어공부를 한 것입니다.
단어 정리는 구글 엑셀에 주제어/숙어표현/무관사 표현/그냥 모르는 단어/동사+전치사 짝 이렇게 5개의 섹터로 나눠서 정리했습니다. 구글 엑셀 쓰시면 연동이 잘 돼서 폰으로 보다가 패드로 보다가 노트북으로 보다가 할 수 있어서 좋아요.
3.수업복습
그날 받은 첨삭과 모범답안은 반드시 그날 다시 보려고 했고 모범답안은 노트에 한번씩 적어봤습니다. 작문반 문장구역과 이대반 불한통역 텍스트는 수업영상 올라온거 1.5배속으로 들으면서 복습했고 새로 배운 표현과 단어는 구글 엑셀에 바로바로 정리했습니다. 나중에는 모범답안을 따라 적은 노트가 새로운 병기가 되어 이거 한권만 들고다니면서 수시로 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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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팁
번역 팁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해보이네요. 그냥 제가 8개월 간 번역 훈련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 첨삭과 복습 과정 등을 토대로 습득한 몇 가지를 공유해보겠습니다.
1.큰 단위로 끊어 읽자
문장보다는 문단 단위로 끊어 읽는 것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텍스트 전체를 한번 쭉 읽어보는것도 좋습니다.
문단 단위가 한문장 한문장 끊는 것보다 호흡이 길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시간이 더 오래걸리는 듯 해 조급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연결하여 구성할 수 있고 오역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2.단어 하나로 만족하지 말자
한국어도 한 단어가 한 가지 품사로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듯이(ex. 생각하다, 생각하는, 생각 등등) 프랑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단어를 외울 때 파생된 다른 품사들도 함께 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먼저 단어 하나만 외우는 것보다 더 잘 외워집니다. 우리 뇌의 정보 저장 방식은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단 하나의 정보만 입력하는 것보다 서로 연관되어 있는 여러가지를 묶어서 입력했을 때 더 잘, 오래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번역할 때 문장 구조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매끄럽게 풀어지지 않는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 표현해 볼 때 매우 유리했습니다.
3.동사를 잘 써먹자
프랑스어의 꽃은 동사라고 할만큼 무려 8000개 이상의 동사가 있다고 합니다. 동사를 잘 쓰는게 당연히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죠. 문단을 읽고 내용 파악한 후 각 문장에서 주요 동사로 뭘 쓸지 떠올려보는것이 문장을 빠르게 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같이 쓰이는 전치사도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합니다.
4.헷갈리지만 멋진표현<<<<<멋있지는 않지만 확실히 아는 표현
당연한 소리 같지만 막상 번역을 하다보면 내 번역이 너무 밍숭맹숭해보여서 어디서 본듯한 멋드러진 표현을 쓰고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레 생깁니다. 하지만 괜히 기교 부리려다가 헷갈려서 틀리게 쓸바엔 내가 10000프로 확실히 아는 단순한 표현을 쓰는게 훨씬 더 전달력이 좋고 문장이 깔끔해지더군요.
5.주어를 잘잡자 (부제: On을 지양하자)
이건 슬아샘이 개인수업에서 잡아주신 부분인데요. 제가 습관적으로 On을 주어 자리에 남용하고 있었습니다. On을 꼭 주어로 써야하는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주어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잡으라는 조언을 받은 후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고 문장이 훨씬 깔끔명료해졌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 버릇을 고친 덕분에 저의 번역 퀄리티가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
6.책 두 권 추천 드리겠습니다
프랑스어 동사 중 다빈도 1800개가 어떤 전치사와 쓰이는지 혹은 전치사 없이 바로 목적어가 오는지 예문과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동사의 뜻은 따로 안나와 있지만 예문이 직관적이라 동사 뜻이 여러개더라도 이 전치사가 붙은 경우 어떤 뜻으로 쓰였구나를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책 사이즈도 작아 늘 지니고 다니면서 동사와 전치사를 묶어서 눈에 익혔습니다.
이건 슬아샘도 추천해주시고 이전 합격생 분의 수기에서도 언급되었던 책인데요. 단어 별로 어떤 동사와 쓰이는지를 알려줍니다. 획일화된 표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들춰보면 표현이 한결 다양해집니다. 다만 내용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이걸 다 씹어먹겠다라는 생각은 애시당초 버리시고 필요할 때, 궁금할 때 도움을 받는 정도로 사용하시면 좋을 거예요.
두 권 모두 프렌치북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스터디
7월 중순부터 이대 번역 지망생들끼리 한불, 불한 텍스트와 모범답안을 돌아가며 준비해서 같이 시간재고 써보는걸 했는데 9월 즈음에 각자 공부에 집중하기로 하고 스터디는 중단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소수정예로 셋이 모여서 주말스터디를 하게 되었는데요. 과거 작문반 번역 텍스트와 모범답안으로 주말마다 각자 집에서 100분 재고 한불,불한을 풀로 하고 오토꼬히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좋았던거는 구글 독스를 셋이 공유해서 아무나 시간날때마다 250-400단어 분량의 불어 텍스트를 수시로 채워놓으면 다같이 그 텍스트 밑에다가 한국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총 50개 정도 한 것 같네요. 누가 어디까지 했는지 바로 보이니까 더 으쌰으쌰 하게되었고 한국어 표현력이 많이 개선되는걸 느꼈습니다. 저희는 그걸 톰리들의 일기장이라고 불렀는데 우리 소수정예팀원들 덕분에 참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후기
글이 너무 길어진것 같아 후기는 진짜 짧게 쓰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불한 번역이 지금껏 연습했던 모든 텍스트+기출 포함해서 가장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원래는 불한 번역과 검토 30분, 한불 번역 50분, 한불 검토 20분 이렇게 시간 분배를 하도록 훈련했는데 불한에서 5-10분 정도 지연되었습니다. 여튼 그래도 정신차리고 한불은 다행히 극악의 난이도는 아니어서 시간내에 작성하고 검토 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통역시험은 보긴 봤는데 굳이 언급은 안하겠습니다. 통역과 합격생 분들이 잘 써주셨을 거예요.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려 5주나 걸려서 기다리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역이나 누락 등 중대한 실수를 한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잘한것도 하나 없었던거 같아서 이 정도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몹시 불안했습니다. 발표 전 1주일이 특히 힘들었는데 수시로 불합격하는 꿈을 꾸고 하루종일 우울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너무 하고싶은 일이어서 꼭 되고싶다는 욕구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약사고시 합격자 발표 기다렸을 때보다 초조했던것 같네요. 여튼 이대 준비하시는 분들은 결과가 늦게 나오니까 마인드 컨트롤 잘 하시면 좋겠네요.
마무리하며
슬아쌤! 항상 뛰어난 번역센스로 감을 키워주시고, 제가 스스로의 실력에 의문을 갖고 좌절감에 빠지려 할때마다 응원과 확신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그때마다 제가 얼마나 기운이 났는지 몰라요!!! 그리고 가끔 던지시는 농담이 저는 너무 재미있어서 샘 덕분에 수업시간에 혼자 진짜 많이 웃었어요 ㅋㅋㅋ 합격했다고 연락 드렸을 때 제 합격의 8할은 샘이 기여하셨다는 말 진심이었어요.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그리고 미숙쌤! 올해 입시 준비하면서는 뵙지 못했지만 작년에 제가 도망각 재고 있을때 저의 가능성을 봐주시고 계속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결국 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올해 꼭 합격소식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함께 공부한 이대실전반 친구들 모두 고생많았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완주한 멋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 모두 한 배를 탔으니 앞으로도 잘 지내봅시다!!
마지막으로 저처럼 일을 하면서 입시 준비를 하게 될 분들, 시간은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 하지말고 자신을 믿으세요. 그리고 절대로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마세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임하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하루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는 인간이 재미없고 이해되지 않았을텐데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강아지 강노노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